-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실체가 파악이 될것임. 기마민족의 주류는 동이족이었으며 기마민족의 내분으로 중국의 한(漢)족이 떨어져 나가고 동이족은 한반도를 비롯해서 중국의 동쪽과 북쪽까지의 영역을 차지하였음-밑에 자료 참고.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와이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됐는데, 이는 남방계가 대규모로 옮아오기 이전에 알타이산맥이나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에서 빙하기를 피해 남하한 집단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결국 “지금의 한국인은 한반도에 먼저 들어온 일부 북방계와,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이 섞여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한민족의 주류는 북방의 기마민족이었으며 바이칼 호를 중심으로 환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밑에 자료 참조) ~~~~~~~~~~~~~~~~~~~~~~~~~~~~~~~~~~~~~~~~~~~~~~~~~~ 고대 동이족들이 중원으로 들어가 큰 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도 시작되었다는 말이 된다. 당시 환국桓國과 배달국, 그리고 그 뒤의 단군조선에서 갈라져 나간 구환족九桓族, 즉 구이九夷들은 중원대륙의 대부분을 활동무대로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 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가 그 중심 지역이다.』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동이족이 차지하고 살았으며 중국인들의 시조인 삼황오제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은 중국의 학자들 스스로 수많은 자료와 문헌, 유물 등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며, 저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들의 뿌리를 뒤엎는 혁명적인 주장을 할 리는 만무하다. 결국 고대 중국의 역사는 곧 동이족의 여러 지류가 중원으로 흘러들어가 서로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성립된 왕조들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도 넓은 대륙에 산재한 56개의 소수민족은 그 잔영임이 틀림없다. ~~~~~~~~~~~~~~~~~~~~~~~~~~~~~~~~~~~~~~~~~~~~~~~~~~~~ 뉴스 9]`일본인 선조 한반도서 왔다` [일본인들의 직계조상이 한반도에서 건너갔음을 입증해 주는 DNA 결과가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1) 환국(桓國) : 인류문명사의 뿌리 되는 세계 최초의 시원문명국가인 환국의 실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보면 “석유환국(昔有桓國)”,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환국의 ‘국(國)’자를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인(因)’자로 변조하여 환국, 배달, 조선의 창업자 환인·환웅·단군을 모조리 도매금으로 신화의 인물로 몰아붙이고 한민족의 뿌리사를 송두리째 거세시켜 버렸다. 12환국으로 나누어 다스린 환국은 천산(天山) 동방에 남북 5만 리, 동서 2만여 리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광역동방문명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환국은 7대의 환인이 3,301년(서기전 7199∼3898) 동안 다스린 것으로 전하고 있다.
(2) 배달(倍達) : 환국 말기인 약 6천 년 전, 환국의 환인의 명을 받은 환웅(桓雄)께서 동방문명개척단 3천 명을 거느리고 동방 태백산(백두산) 신시(神市)에 와서 토착족인 웅족, 호족을 융합하여 배달국을 건국함으로써 민족사의 첫 기원을 열었다. 즉 상고시대 한민족사의 최초의 도시인 신시에 도시국가를 열고 단군의 고조선 이전의 환웅천황의 통치시대인 배달 신시시대를 개창하였다. 이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응제시주』, 『세종실록』 등과 신교의 도가사서인 『삼성기』(상·하),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민족을 반만년 배달 민족, 배달의 후예라고 일컬어 온 데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고조선 이전에 환웅의 배달 신시시대가 엄연히 있었다. 모두 18대 환웅천황이 1,565년 간(서기전 3898∼2333) 배달 신시시대를 통치한 것으로 전해 온다.
(3) 조선(朝鮮) : 고조선을 개창한 국조 단군성조께서는 “여요동시(與堯同時)”라고 하여 중국의 요임금과 동시대 인물이었음이 『삼국유사』, 『응제시주』, 『세종실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사기』, 『관자』, 『산해경』 등 중국 고대 사서에서는 고조선의 머리와 몸체는 거세해 버리고 꼬리 되는 말기의 역사만을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왜곡 날조하여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단군의 고조선은 초기에 이미 청동기시대에 진입해 있었고, 법률제도(팔조법)가 있었으며, 문자(원시한글인 가림토·고대신지문, 圖畵문자와 문자토기의 발견)를 사용했다. 또한 화폐제도(명화전·일화전, 팔조법 중 50만 전 배상 내용), 조세제도(1/20세), 토지제도(均田制), 역(易)철학과 음양오행 상수(象數)철학, 책력법(曆法) 등 고도의 선진문화를 창조 발전시킨 문명국가 시대였다. 단군의 고조선은 신교 삼신사상에 입각하여 전영토를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하였고, 모두 47대의 단군이 2096년 동안(서기전 2333∼238) 다스린 고대 한민족사의 최대의 전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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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1 . 고구려 천리장성이 중국 만리장성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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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작업이 노골화되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 후예가 건립한 발해(대진국)의 옛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에 대한 복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헤이룽장성은 이 사업을 법률로 뒷받침하기위해 유적지 보호 조례를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 당국은 최근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이 약탈해 간 발해비석 ‘홍려정비’의 반환도 일본 측에 요구했다. 발해수도를 ‘중국역사’로 유네스코에 등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발해를 ‘당나라 때 중국 동북지역에 말갈족과 다른 민족이 세운 소수민족 정권’으로 못박고 있다. 지난 1961년 상경용천부 유적을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으며, 지난 2002년부터 5개년계획으로 복원 준비작업을 해왔다. (5.30)
“한-일-몽골의 뿌리는 하나 … 중국 한족과는 달라”
김운회 동양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대쥬신을 찾아서』(해냄)에서 몽골·만주·한반도·일본을 연결하는 문명사적 벨트의 주역이자 공통의 민족적 시원으로서 이들 지역에 금속문명을 전파한 ‘쥬신’이라는 유목민족을 제시했다.
그동안 중국의 사서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거주한 동이(東夷)족을 크게 동호(몽골, 거란), 숙신(말갈, 여진), 예맥(고조선, 부여, 고구려)으로 분류해 왔다. 한국학자들은 이 중 예맥족이 한반도 남부의 한(韓)족과 결합해 오늘날의 한민족이 됐다고 설명해 왔다.
이런 가운데 제기된 김교수의 대쥬신론은 “동호, 숙신, 예맥은 물론 한민족과 일본민족까지 동일 원류에서 비롯했으며, 이는 중국 한족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김교수는 만주족이 세운 금과 청의 역사서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신라 출신의 김함보(金函普)라 밝히고 있음에 주목한다. 금과 청은 이에 따라 자신들의 성(姓)을 금(金)을 뜻하는 아이신자오뤄로 지으면서 그 한자 표기를 애신각라(愛新覺羅)로 해서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는 뜻으로 새겼다.
고구려 사극, 중국과 외교문제로 비화되나
대한민국 지상파방송 3사가 일제히 기획한 고구려 사극이 자칫 중국과 외교문제로 비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고구려 건국기를 재현한 MBC 〈주몽〉이 5월에 포문을 연 데 이어, 7월에는 중국과 당당히 맞선 고구려의 역사를 그린 SBS 〈연개소문〉이, 9월에는 발해 건국기를 그린 KBS 〈대조영〉이 방영된다. 광개토대왕 일대기를 그린 MBC 〈태왕사신기〉도 연말쯤 전파를 탄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 측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상하이 국제방송영상견본시 2006’에 참가한 중국측 방송관계자들은 “한국의 방송 3사가 일제히 고구려사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 작업에 대한 한국정부 차원의 대응이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중국정부 내에서 해외방송 프로그램의 수입·심의를 담당하는 광전총국은 일방적인 ‘한류’ 수출을 문제삼아 올해 1월부터 한국드라마 심의를 전면 보류하고 있다. (6.22)
“중국동북공정에 맞서 드라마 〈연개소문〉 기획”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은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논란인 동북공정에 대한 저항이 드라마의 중심 축이다. 이환경 작가는 〈연개소문〉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맞서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고구려를 죽이고 있다”며 “아예 없는 나라 취급을 하려든다. 왜냐면 역사상 중국에게 그만큼 많은 패전과 열패감을 준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나서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중국의 불합리한 역사 사업에 태클을 걸고 싶었다고 한다. 드라마는 연개소문과 당태종과의 안시성 전투를 담은 1·2회분 촬영에 5개월을 소요했고, 총 제작비 400억원이 들어간다. (6.28)
중국 “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중국 지린성 지린시에 위치한 고구려 용담산성에 고구려 건국 주체가 중국한족이었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버젓이 세워진 게 목격됐다. 중국 지린성 정부가 세운 용담산성 안내판은 제목부터 ‘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결과 고구려가 중국 고대국가인 상(商, 기원전1600∼1046년)나라에서 나왔다는 것이 확정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그동안 고구려를 중국 동북 변방의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로 보아온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구려의 기원 자체를 중국(한족)에서 찾은 것이다(상(=은)나라를 건국한 성탕의 혈통은 본래 한민족이다).